소비의 변화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내 생활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소득과 소비의 변화다.
우선 소득에선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내 업무 성과와는 상관없이 연초에 계약한 월급만이 곧 소득이던 상황에서, 내 업무 성과가 곧 나의 소득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내 프로젝트 정산서에 내 한달, 아니 몇달치 월급만큼의 수익이라는 숫자가 회사 생활할 때는 실체가 없는 그저 문서상 숫자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내 통장에 찍히는 실체가 있는 숫자가 되었다.
내 통장에 찍힌 의미를 되찾은 숫자들을 보니, 그 동안의 월급쟁이 생활에 조금은 회의가 들기도 했다.
이렇게 내 업무 성과를 온전히 내 소득으로 사용하다 보니, 그리고 그 소득이 생각보다 크다 보니 자연히 소비에도 변화가 있었다.
얼마되지 않는 정해진 금액을 쪼개고 쪼개서 생활했던 시절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고가의 소비도 지금은 많은 고민 없이 하고 있다.
한동안은 초고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유행하는 명품을 미친듯이 구매하기도 했고, 가족 여행에서는 더 좋은 숙소, 더 좋은 음식을 내 가족에게 누리게 하고 싶어 아낌없는 소비를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필요하다 싶으면 가격이 좀 나가더라도 구매를 해야 직성이 풀렸고, 소비를 위해 이유를 만들어 내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는 여러가지 혜택들이 있다.
위에서 말한 소득이 늘어나는 것과 은행에서 허락한 한도의 법인카드, 그리고 사업자 명의로 여유자금도 빌릴 수 있다.
노련한 대표라면 이러한 혜택을 잘 이용하여 회사와 생활 모두를 윤택하게 하겠지만,
초보 대표인 나는 갑자기 생긴 그 큰 돈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돈 마냥 흥청망청 소비하기에 바빴다.
이런 소비 형태와 지난 해말부터 이어진 사업의 어려움으로 여유롭던 내 통장은 지금 말라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들어갈 지출들에 대해 생각해 보니, 허탈했다. 그리고 난 로또에 당첨되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변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얼마전부터 소비의 변화, 아니 소비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소비 정상화를 시작하기 전 나에 대해 분석을 해봤다. 그 분석에 따르면 난 절약하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술, 담배를 하지만, 술은 보통 반주로 한병 정도로만 마신다. 1인 법인이다 보니 큰 돈을 들여 마실 회식이나 모임자리가 영업 활동 외에는 크게 없다.
그리고 워낙 정적인 인간이다 보니, 딱히 취미라고 할 것이 없다. 그래서 취미에 돈이 들어갈 일이 별로 없다.
이 분석을 통해 파악한 나는 그나마 희망적인 사람이라는 위안으로 소비 정상화를 시작했다.
아래는 내 소비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들이다.
1. 점심은 도시락으로
계산을 해보니, 나와 와이프 둘이 일하는 작은 사업장이지만 점심 식대로 약 2만원 정도를 소비하고 있었다. 한달에 약 40만원정도를 지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식대를 줄이기 위해 점심은 외식 대신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대신하고 있다.
2. 불안 해소를 위한 소비는 하지 말자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 때 잘나가던 개그맨 황현희씨가 소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컨텐츠를 본 적 있다.
"소위 부자가 아님에도 명품을 소비하는 것은 자신의 불안감 때문이다. 지금 내 자신이 초라하다 느끼기 때문에, 남들에게 인정 받기 위해 명품을 소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명품을 걸친들
너 자신이 명품이 아니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부자는 짝퉁을 입어도, 싼 옷을 입어도 그 사람이 명품이기에 다 명품처럼 보인다." 라는 내용의 컨텐츠 였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머리가 띵했다. 맞다. 이게 바로 지금 내 잘못된 소비의 증상이다.
사업이 잘될 때는 풍족한 통장에 대한 안심과 이 풍족함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에 대한 불안에 소비가 늘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업에 대한 불안과 공허함에 소비를 하고,
그 소비로 인해 줄어든 통장 잔고에 또 다른 불안감을 얻는다. 악순환의 고리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로 했다.
소비에서 내 감정은 빼버리기로 했다. 내 감정을 빼버리고 정말로 필요한 것 그 중 저렴한 것을 구매하려고 노력 중이다.
3. 소비 가계부 적기
어플로 간단한 가계부 어플을 다운 받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가계부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소득은 적지 않고 소비만 적는 것이다.
소득을 적게 되면 안그래도 소득이 없는 현 상황에서 불안감과 좌절감만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소득은 적지 않는다. 없는 소득 때문에 마이너스가 되는 것 보다는
소득을 적지 않기 때문에 마이너스로 표시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나는 그렇다.)
이렇게 크게 3가지의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 소비 정상화를 시도할 때 힘들지 않을까? 극단적으로 마약을 안하는 사람은 있지만, 한번만 한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소비도 마찬가지로 써봤으니 그 쾌감과 불안감 해소를 끊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시도를 해보니, 소비에 대한 금단 증상 보다도 더 많은 장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시락은 외식 보다 더 맛있다. 와이프의 요리 솜씨가 좋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사무실에 앉아 혼자 또는 둘이 조촐하게 먹는 도시락은 오붓한 매력이 있다.
궁상맞아 보이기 보다는 내 다짐을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이 나름 멋있어 보인다.
그리고 덤으로 과식 하지 않아, 속이 편안하고 건강에도 유익한 느낌이다.
소비는 소비일 뿐이다. 소비를 할 때 내 감정보다는 소비의 목적에 집중하다보니, 이것저것 따지게 되고, 안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더욱 놀라는 것은 이렇게 대체제를 찾다 보니, 그 동안 우리집 구석에 묻혀있던 입지 않은 옷이나 사용 하지 않는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옷을 사는 것이 내 유일한 낙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부터 많이 사는 편이었고, 입다가 조금 불편해지면 잘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이 많았다. 그 옷들을 새 옷을 사는 것을 대체재로
활용하기 위해 다시 입어보고 코디를 해 보니, 꽤 쓸만한 옷들이 많다. 이제는 유행을 따라야 하는 나이는 지났기에, 나에게 어울리는 코디로 그 옷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 놓고 안 쓰는 물건도 그 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쓰임을 찾아줌으로써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있다.
소비 가계부를 쓰고 난 후 부터 무소비에 대한 도전감이 생겼다. 깨끗이 비워진 그 하루의 칸을 보면 왠지 뿌듯하다. 이런 무소비 도전감으로 소비를 할 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왠만하면 소비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대해질때로 비대해진 내 소비욕으로 이를 줄이고자 처음 다짐했을 때,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 소비는 그 불안감으로부터 비롯된 부분이 많기에.
하지만 정작 소비 정상화를 시작하면서 내 정신이 맑아지고 가벼워진 느낌이다. 마치 다이어트에 성공해 몸이 가벼워진 것처럼.
풍족할 때 진작 시도했다면, 소비로 인한 불안의 악순환을 겪지 않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든다.
지금 이대로 계속 진행하자. 그리고 습관으로 만들자.
소비로 불안을 구매하지 말자.